This movie is spam! (영화 사냥)
예고편이 그럴싸하면, 예고편이 그 영화에 전부라고 했던가? 하지만 영화 ‘사냥’은, 예고편보다도 훨씬 못한, 대표적인 먹튀 영화로 기억 될 듯싶다. 예고편에선 그래도 뭔가 있을 법해 보였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그 깊은 산 속엔,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어처구니없는 죽음만이 있었을 뿐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도대체 뭘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흥미진진한 오락성을 제공한 것도 아니다. 90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의 몸을 비비꼬이게 만든, 감독의 탁월한 연출 능력에, 그저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동안 ‘사냥’류의 영화가 더러 있었다. 가장 최근의 영화로는 ‘해무(2014년)’가 있었고, 훨씬 더 오래 전 영화로는 ‘송어(1999년)’가 그러했다. 모두 다, 제한 된 공간 안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불러일으킨,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공교롭게도 ‘해무’와 ‘사냥’, 이 두 편의 영화에 한예리가 여주인공으로 등장을 한다. 캐릭터의 느낌 또한 비슷하다. ‘해무’에서는 연변사투리를, ‘사냥’에서는 강원도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인물로 나온다. 게다가 영화에서, 갈등 구조를 극대화 시키는, 사건의 촉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까지 일치한다. ‘해무’에서는 한예리를 지켜주는 흑기사가 박유천이었다면, ‘사냥’에서는 안성기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배우 한예리가 한쪽 캐릭터로 고정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
어찌 됐든, ‘해무’는 실화적 사건을 바탕으로 매우 암울하고 처절하게 극적전개를 시켜나간 작품이고, ‘송어’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서 추잡한 인간의 본성을 그려나간 작품이다. 그래서 두 작품 다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냥’에서는 그저 무의미한 총질과 죽음만이 있었을 뿐이다. ‘사냥’은 ‘해무’에서처럼 전혀 처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송어’에서처럼 인간의 심리적 갈등 구조가 미묘하거나 치밀하지도 않다.
이 영화를 보는 중간에, 문득 마카로니웨스턴(macaroniwestern)이 생각이 났다. ‘사냥’은 전체적으로 서부 활극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 골드러시(gold rush)가 한창이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범죄와 총격전이 난무하는 유의 영화를, 우리는 흔히 마카로니웨스턴이라 부른다. 이 영화 역시, 양순(한예리 분)의 할머니가 거대한 금맥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금맥을 둘러싸고, 문기성(안성기 분)과 박동근(조진웅 분)일당 간, 일대 다수의, 대결 구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전혀 흥미롭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파스타를 우물거리며 볼 만큼, B급 영화류의 재미를 선사하지 않는다. 감독이 이 영화의 장르를 액션스릴러로 표방한 만큼, 긴장감이나 박진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적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교훈을 주기 위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에게, 다양한 캐릭터성을 부여시키지도 않았다. 정말 이도 저도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지나친 비약인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카로니웨스턴류의 킬링타임용 영화를 볼 때는, 영화에 몰두하지 않아도 극의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장황한 설명이나, 심오한 주제를 다루어서도 안 된다. 간단명료한 줄거리 내에서, 오로지 비주얼 위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과거에 대한 부연(敷衍)설명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주 나온다. 이런 끼워 넣기 식의 회상장면은, 오히려 쫓고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극의 흐름 깨고 흥미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볼거리를 기대하고 있던 관객들은, 갑자기 등장한 어둡고 침울한 과거장면 때문에, 매우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이는 액션스릴러 영화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어떤 관객도 액션스릴러 영화를 보러오면서, 주인공들의 불우한 가족사를 예상하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부터 맥을 잘 못 짚어도, 한참 잘 못 짚었다.
상황설정도 매우 미흡하기 짝이 없다. 산은 관객들에게 스릴감을 심어주기에는, 숨을 곳이 너무 많다는, 단점을 지닌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너무 쉽게 발각 되고, 너무 쉽게 그 모습을 노출 시킨다.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낯선 공간이라 길을 잃은 것도 아니 것만, 박동근 일당의 손아귀에서 쉽게 벗어나지를 못한다.
물론 양순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함께 도망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양순은 산을 마치, 제 집처럼 쉽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할머니가 있는 곳이 궁금해, 금맥이 있는 장소까지 쉽게 찾아올 정도다. 너무도 익숙한 곳이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산 아래로 도망을 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 다람쥐 쳇바퀴처럼, 계속 그 자리에서만 맴돈다.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감독은 디테일 하게, 양순을 더욱 더 나약한 인물로 그렸어야 했다. 그리고 산이란 공간적 배경 역시, 너무 크고 장황하게 가져갈 필요도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산사태가 났다든가 아니면 개울물이 불어, 어느 특정한 장소에 고립된 걸로 설정했더라면, 훨씬 더, 사실감 있고 긴장감도 높았을 것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심리묘사에 있다. 그래야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을 통한 스릴감을, 몇 배 더 증폭 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이게 그려지고 있다. 그나마 심리변화가 일어나는, 입체적 배역을 찾아보라면, 맹준호 실장(권율 분)과 엽사 손기욱(?)이 전부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스릴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정작 심리묘사가 디테일하게 그려져야 할 주인공들에게선, 그러한 세밀함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문기성을 보면, 이 사람 정말 감정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란, 의문이 들 정도다. 마치 나무토막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리 손녀딸인 양순을 구해내기 위한, 부성애(?)가 발동 되었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침착하기만 하다. 광기(狂氣)에 사로잡혀 살인마들로 돌변한, 박동근 일당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선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영화 중간에는 초인적인 힘마저 발동을 한다. 총으로 중무장을 했을 땐, 영락없는 람보다. 게다가 홍콩 르와르영화의 주인공처럼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 이 영화 어디에서도, 스릴러 장르가 갖는 긴장감이나 공포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영화 장르를 스릴러라고 내 걸어 놓고, 정작 등장인물들은 마카로니웨스턴 화를 시켜버리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또한 매우 어설픈데다가,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양순 할머니는 아들의 기일날, 아들이 죽은 사고현장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던 중, 거대한 금맥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이 늙은 노모를 위해, 축복을 내린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결국 양순 할머니가 발견한 금맥이 발단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양순 할머니도 문기성도 모두 죽는다. 감독은 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아들이 노모에게 자본주의의 비정한 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니면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의 딸 양순이를, 거대 금맥의 최종 수혜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설정은, 차라리 처음부터 빼고 가는 게 옳았다는 얘기다. 구조적 논리성에도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스릴러 장르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토리다.
결국 이러한 억지스러운 도입부로 인해서, 영화는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과거 이야기에 집착을 한다. 금맥이 발견 된 장소는, 양순 엄마가 사기를 당해서 구입을 한 쓸모없는 산이다. 이로 인해 양순 엄마는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곧이어 양순 아빠도 금광 갱도가 무너지는 사건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말 그대로, 양순이네의 불우한 가족사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영화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끼워 넣기 식으로, 꽤 자주 등장을 한다. 액션스릴러 영화에서, 왜 이런 스토리가 필요했던 것일까?
게다가 ‘사냥’은 90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영화에 속한다. 그 러닝타임을 모두 다 액션과 스릴러로 채워도 모자랄 판국에, 상당부분의 시간을 비극적인 양순네 가족사로 채워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계속해서,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고, 전혀 흥미롭거나 긴박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다 과감히, 빼고 가야 할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양순 할머니, 양순 아빠, 양순 엄마, 문기성의 딸 문정숙, 심지어는 양순이 마저도, 모두 불필요한 인물들이다. 대신에, 사회적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엽사들에게 좀 더 큰 비중을 두었어야 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물질만능의 폭력성을 대변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작 중요한 위치에 서야할 엽사들을, 그냥 다수의 군중들로만, 묘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누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로인해 어떠한 사고방식을 지녔는지에 대한 내용조차,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는 캐릭터성의 상실이다. 엽사들 개개인의 성격은 다 실종 된 채, 단순히 무리들로만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정작 중요하게 가져가야 할 요소들은 등하시하고, 주구장창 쓸데없는 내용들로만, 상당 시간을 채우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감독은 이 영화의 장르를 액션스릴러로 표방하면서, 주인공들의 성격을 마카로니웨스턴 화 시켰다. 그리고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비극적인 가족사를 끼워 넣었으며, 자본주의적 물질만능주의의 폭력성이란 심오한 주제까지도 함께 곁들이고 있다. 감독이 너무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아니면, 장르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던가...
앞으로는 이런 유의 영화가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 낭비, 돈 낭비, 필름 낭비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스팸(spam)영화라 정의 내리고 싶을 정도다.
배우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실망감도 매우 크게 느껴진다. 훌륭한 배우란 단순히 연기만 잘 한다고 얻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상당부분 필요하다. 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조진웅, 손현주, 권율 등은 모두 주연급에 해당되는 배우들이다. 한참 잘 나가고 있는 중이며, 그동안 출연한 작품들 또한 전혀 나쁘지 않았다. 왜 이런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영화 ‘사냥’이 이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 흠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만사 이런 생각 저런 생각 > 영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평론 터널 (상) (1) | 2016.08.30 |
---|---|
영화 평론 봉이 김선달 (1) | 2016.07.08 |
영화평론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1) | 2016.06.20 |
영화평론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5) | 2016.06.14 |
영화평론 나의 소녀시대 (4) | 201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