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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런 생각 저런 생각/영화평론

영화평론 나의 소녀시대

우리는 그렇게 꼰대가 되가는 거야... (영화 나의 소녀시대)

개인적으로 대만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말 할 수 없는 비밀’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이 두 편의 영화 때문이다. 홍콩 르와르 영화와 중국 5세대 감독 영화가 중화권 영화의 전부일 거라는 편견이 한창 자리 잡고 있을 무렵, 대만 청춘영화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함과 아련함으로, 감성지수를 최대치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두 편 다 감독의 세계관이 영상미와 함께 잘 어우러지면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마무리 또한 훌륭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나의 소녀시대’에 거는 기대감이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대만판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미 대만 박스오피스에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고 한다.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면,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일까?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지극히 교과서 적이고 지극히 단순하다. 그냥 전형적인 과거 회상 드라마로, 밋밋한 플롯형태를 끝까지 고수한다. 마치 패션브랜드 유니클로를 보는 것 같다. 현재 대세적 유행코드를 첨가하여 빠르게 기계틀에 넣고 뽑아 낸, 패스트 의류를 입은 느낌이랄까? 딱 그 수준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감독은 영화 기획당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하지? 그래서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이 복고 코드였을 테고, 여기에 로코 장르에 필수 조건인 잘 생긴 남자배우 2명과 전혀 어글리하지 않지만 어글리하게 연출 된 여주인공을, 빠르게 필름 틀에 넣고 돌려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찍어낸 결과물이 바로 ‘나의 소녀시대’인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바로 감독의 어설픈 연출력으로 인한, 현재의 린전신(여주인공)이 전혀 일관되지 않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정상적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는, 회사에 큰 공을 세운 린전신이 사장과 직원들의 환대를 받는 장면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 그녀는 일에 있어서 크게 성공을 거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을 한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부터는, 사장의 눈치만 살피면서 야근만 일삼는, 무기력한 팀장으로 그려지고 있다. 바로 전 상황과, 절대 매치가 되지 않는, 전혀 낯선 모습니다. 직원들을 휘어잡는 통솔력도 없고, 카리스마는 더더욱 없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해서, 회사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 감독은 과거에 당당한 린전신과 현재에 무기력한 린전신을 다르게 대비 시키면서, 그녀의 잃어버린 모습을 되찾게 하려 한 듯싶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나를 되찾는 과정에서, 성공한 현재 위치를 과감히 버려야만, 더욱 더 극적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감독의 지나친 욕심으로,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져가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대조적인 논리들이 함께 충돌하게 되면서, 스스로 모순적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1번 나는 무기력한 린전신에게 과거에 당당했던 모습을 되찾아 주고 싶다.

2번 과거 당당했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현재의 위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3번 과감히 버려야 할 현재 위치가 크고 높을수록, 극적 효과가 높다.

4번 극적효과를 최고로 높이기 위해서, 그녀는 현재 회사에 많은 공을 세우고 크게 성공을 한 팀장이다.

1 + 2 + 3 + 4 = 고로 그녀는 현재 무기력하면서 성공을 한 팀장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인물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물의 행동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동기부여 역시 매우 미흡하다. 린전신은 우연히 편의점에서, 자신을 험담하는 팀원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이 매개가 되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낙서장을 꺼내 보게 되고, 결국 과거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팀원들이 몰래 자신을 험담했다는 사실이, 성공한 현재 모습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정도로, 그녀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었던 것일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상에서,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도 아닌, 야근에 대해 불만을 품은, 회사 팀원들의 단순험담이다. 이는 회사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으로, 거의 20년 가까이 그저 일만 바라보며 현재의 위치까지 쉼 없이 달려왔던 그녀에게는, 그동안에도 수 없이 많이 경험했던 일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감독의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 변화를 못 이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온 세상은 변화의 물결로 매일 요동을 쳐댈게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일상험담으로 흔들릴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자신의 험담을 늘어놨다는 이유로, 처절한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보편적 본성이다. 그녀는 추억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욱 더 비상식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린 뒤, 과감히 사표를 집어던지고 나와, 모든 회사 직원들에게 크게 한턱 쏘겠다고 골든벨을 울린다. 정말 실소가 터져 나오는 대목이다. 대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취업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건, 이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첫사랑에 대한 아쉬운 추억 때문에, 지금까지 이뤄놨던 사회적 위치를 과감히 버려버린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해 불가한 행동이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인 동물이다.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끔은 옛 추억에 잠겨, 그 시절을 그리워 할 수는 있다. 현재의 내 모습에서 매우 큰 실망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변화를 꽤할 수는 있어도, 내가 가진 것을 전부 버리면서까지 추억을 쫓지는 않는다.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이코 패스 드라마가 아닌 이상, 영화 속 인물과 나는 동일시되어, 공통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영화는 바로 내 얘기야.” “난 XX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어.”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등의 말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감독은 주인공에게 비정상적 인간행동을 부여함으로서, 영화 스토리와 인물을 따로 겉돌게 했다.

이 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과거 90년대 이야기는, 그래도 이펙트를 줄 만한 연출과 내용이 분명 존재하고 있어서 그런지, 꽤 볼만은 했다. 전체적으로 로코형식의 드라마구조를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학원멜로물이기 때문에, 그저 부담 없이 웃으면서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충분히 된다. 하지만 대만판 ‘응답하라 시리즈’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괜히 물음표가 찍어진다. 그 당시 90년대 대만 가요를 잘 알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감독은 음악과 장면을 효과 있게 매치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과 함께 기억에 남는 장면이, 특별히 없다. 음악은 인간의 공통 언어이기 때문에, 나라가 다른 이유로 가사의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멜로디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따라 갈 수 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모은 것도, 등장인물간의 관계와 드라마 내용이 음악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대만 판 ‘응답하라 시리즈’라는 평가에 전혀 걸맞지 않게, 장면과 음악의 분위기가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다. 추억의 가요를 병렬적으로 그냥 단순 나열만 해놓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다른 대만 영화들에 비해서, 노래의 빈도수가 특별히 많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 주는 강한 이펙트는 ‘말 할 수 없는 비밀’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훨씬 더 훌륭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연출자가 여성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섬세함 또한 현저히 떨어진다. 대만에서 인기 있는 20대 인기배우들을 고등학생 주인공으로 캐스팅 한 것 까지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고, 오히려 30대 이상의 배우들까지도 종종 고등학생으로 출연한다. 그것은 고등학생 시기가 성장이 멈춰가는 단계이고, 오히려 성인의 체형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중학생인 경우는 다르다. 중학생 시기는 성장기의 최절정 단계이기 때문에, 대부분 비정상적인 체형을 하고 있다. 몸에 비해 팔다리가 가늘고 길며, 대체로 길쭉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남자 주인공들을 중학생 역할에까지 배치시켰다. 누가 봐도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성인배우들을 말이다. 차라리 아역배우를 쓰거나, 다른 연출방법을 택했어야했다. 결국 감독의 무책임한 연출로 인해, 영화 몰입도까지 현저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렇듯 감독의 무리한 연출로,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주인공들의 현실에서 90대 대만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서, 나름 위안이 된다. 90년대 중화권은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홍콩은 영국령이었지만, 대만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나라였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만 보더라도 그 시절 홍콩 르와르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 겸 가수 유덕화가 대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홍콩과 대만은 거의 같은 나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은 중국에 반환 된다. 그리고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서는, 쉬타이위(1st 남주)가 불의의 사고로 친구를 잃고, 좌절과 반항의 나날을 보낸다. 이는 당시 홍콩을 잃어버린 대만의 역사와 비슷하다. 사고로 잃어버린 친구는 홍콩을, 방황하는 쉬타이위는 대만을 상징한다. 사고가 있기 전에는 쉬타이위와 오우양(2nd 남주)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친에 소위 엄친아였다. 하지만 사고 이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한 사람은 모범학생으로, 다른 한 사람은 반항학생으로 항상 선생님들의 비교 대상이 된다. 이는 대만내의 정치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만은 대만과 중국을 하나로 볼 것인가, 아니면 따로 볼 것인가를 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두 가지 성향이 팽팽히 맞서고 있던 나라였다. 하나는 친중국적 성향으로 다른 하나는 반중국적 성향으로, 이 두 사람이 분열된 대만의 정치상황을 각기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해 온 학생주임은 강대국 중국을 상징한다. 그가 부임해 오면서 자유로웠던 학교의 모습이 강압적, 강제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는 늘 편견의 시선으로 쉬타이위를 대한다. 쉬타이위가 린전신을 좋아하게 된 뒤, 학업에 충실히 임하는 모범적 학생이 되었음에도, 그는 절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을 저질렀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자율권을 무시한 채, 폭력적인 자신의 방식으로 학교의 질서를 개편해 나간다. 이는 중화권에 질서가, 홍콩 반환이후, 중국의 힘을 중심으로 재편 되었음을 의미하며,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탄압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강당 장면에서, 부정한 학생으로 내몰린 쉬타이위를 도와, 린전신과 오우양이 학생주임과 맞서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부당한 교권에 대항하여, 당당히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게 되고, 결국 학생들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오늘 날 대만은 친중국적 성향보다는 반중국적 성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하나가 되가는 대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력한 힘의 논리 앞에서, 미적미적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강인한 대만 국민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다행이 이 작품이 중화권을 중심으로 흥행에 대성공했다니, 감독은 소귀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좀 더 끌어올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실망 또한 매우 크다. 차라리 영화 앞, 뒤에 편성되어 있는 현재 씬을 과감히 축소시키거나, 아예 다 빼버리고, 과거 내용만 가져갔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거라 본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작품 완성도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어떤 의도로 그런 상황을 설정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감독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진옥산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지려다,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된 꼴이 됐다. 그것은 대중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공감 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아무 의미 없다. ‘나의 소녀시대’가, 한국에서 흐지부지하게, 흥행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