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랑을 말할 때, 남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영화가 끝난 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s) 다 올라가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바로 영화 ‘본 투 비 블루’를 보고 난 이후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삶과 그의 음악이 묘하게 교차 되면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비운의 삶을 살 다 간 천재 연주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 됐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이었지만, 그들 모두가 마지막까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지극히 일상적인 행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잡으려는 이상이 크면 클수록, 또는 내가 느끼는 감성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소소한 행복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진다. 인간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 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끝임 없이 방황을 한다. 무언가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다른 무언가 하나는 버려야 하는 이치, 그게 바로 인생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의 행복에 만족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보다 나은 이름을 얻으려 한다. 마치 자신이 타 죽는 것도 모르고, 불을 좇는 불나방처럼, 일상의 행복을 등한시 한 채 말이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일상의 균형이 깨지고 나서야, 그때 내 삶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 옆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 했던 그때가, 그래도 가장 의미는 삶이었다는 것을...
‘본 투 비 블루’는 천재 트럼펫 재즈 뮤지션인 쳇 베이커의 삶을 그린 영화다. 감독은 그의 굴곡진 삶을 통해, 진정 성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 영화는 마약으로 감옥에 수감 되어 있는 처절한 모습의 쳇 베이커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작한다. 곧이어 영화 제작자가 찾아와, 영화출연을 이유로, 그를 감옥에서 꺼내주게 된다. 다시 트럼펫연주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천운의 기회가 주어지게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행운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에겐 감옥에 수감되기 전, 마약 구입으로 빌려 쓴 돈이 있었다. 그게 빌미가 되어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하게 되고, 결국 앞이빨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기구 할 수가 있을까? 트럼펫 연주자에게 앞이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음악에 문외한 사람들도 대충은 알 것이다. 트럼펫은 입에서 불어 내는 강한 공기의 압력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악기다. 그 공기의 압력을 조절하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앞이빨이다. 연주의 기교 역시 앞이빨의 힘에서 나온다. 트럼펫 뮤지션에게 앞이빨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도달하고픈 꿈과 이상을, 한 순간에, 그것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재즈에 대한 미련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틀리를 끼고 트럼펫을 연주하다 피를 토하는 장면에선, 정말 비참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은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막장에까지 몰렸을 때, 의지 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그게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다. 쳇 베이커 역시, 영화 촬영 중, 상대역으로 만나게 된 제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소소한 일상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이상의 날개가 꺾여 나갔지만, 어쩌면 이때가 쳇 베이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지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살아 갈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기를 위한, 그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 된다. 마약도 끊고, 이빨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수차례나 피를 토하면서 까지도, 그는 절대 트럼펫을 놓지 않았다. 감미로운 재즈 선율과 함께, 쳇 베이커가 낡은 밴(van) 위에서 트럼펫을 연습하는 과정은, 한편의 CF만큼 감각적이다. 황량하고 쓸쓸한 해변을 배경으로 한 이 씬은, 영화 ‘본 투 비 블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더 없이 드넓고 삭막한 바다 풍경이, 어쩌면 쳇 베이커 앞에 놓인 비정한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비록 감독이 긴 시간을 할애 하지는 않았지만, 함축되면서도 이펙트 있게 연출 되면서, 얼마나 쳇 베이커가 재기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 또한 조금씩 결실을 맺어 간다. 그들의 집으로 꾸며진 밴 안에서, 쳇 베이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제인에게 트럼펫 밸브링을 건네면서 프로포즈 할 때는, 이 사람 그래도 꽤 로맨틱하기까지 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록 값비싼 예물용 반지는 아니지만, 제인 역시 재즈 뮤지션에게 있어서, 트럼펫 밸브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일상적 행복이, 계속 이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들의 행복이, 그나마 꽤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인은 쳇 베이커를 만난 이후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번번이 보는 영화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을 했고, 가끔 찾아오는 기회마저도 그를 위해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항상 그의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쳇 베이커를 위해 사용했다. 그런 그녀의 헌신이 기적을 만들어 낸 걸까?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았던 트럼펫 연주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는 기존의 정석적인 재즈의 틀에서 벗어나, 오히려 사고 당하기 전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감성적 연주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다른 유명 재즈뮤지션들에게서도, 그의 연주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도저히 재기 불능일 거라 여겨졌던, 그의 재기가 현실이 되어가는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사랑을 말할 때, 남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기에 성공한 이후부터, 쳇 베이커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제인을 자신의 소유물로 구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에게 영화의 꿈을 포기하고, 자신의 옆에만 있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서로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을 원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한 제인으로 살아 주길 바란 것이다. 쳇 베이커의 중요한 공연이 있던 날, 제인은 함께 있어 달라는 그의 부탁을 뒤로 한 채, 영화 오디션 장으로 향한다. 결국 그는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마약의 힘을 빌리게 된다. 제인 없이 공연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 위한 핑계거리로, 제인을 희생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제인이 오디션을 포기하고 공연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연주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연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선물한 밸브링을 남겨 둔 채, 쓸쓸히 공연장을 떠나게 된다.
감독은 쳇 베이커의 삶을 통해, 세상의 불완전한 행복을 말하고 있다. 쳇 베이커는 트럼펫 재즈 뮤지션으로 엄청난 성공도 했고, 한때 사랑도 했으며, 재기라는 기쁨도 맛 봤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삶이, 과연 행복했었을까? 그는 성공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너무도 중요한,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그는 늘 불안했고, 약물에 의지해야만 했으며,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국인 미국을 떠나, 마약이 합법화 되어 있는, 네덜란드에서 남은여생을 보내야 했다. 아마도 낯선 이국땅에서, 홀로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매일을 연주에 대한 불안감으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늘 마약과 함께 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재기에 실패했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천재 뮤지션 하나를 잃었겠지만, 그는 대신 행복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제인과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살면서, 가끔 취미로 트럼펫을 불었을 것이다. 화려했던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식탁머리 앞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삼아 읊어댔을 것이다. 아빠는 과거에 훌륭한 재즈 뮤지션이었다고... 물론 재기하지 못한 아쉬움이, 평생의 한으로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옆에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불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불행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었다. 많은 대중들이, 그가 약물에 찌들어가면서 토해낸, 그 처절한 선율을 들으며, 오늘도 삶의 여유를 찾는다.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100% 실화는 아니라 한다. 소설 삼국지와 같이, 실제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재구성 한, 역사소설쯤으로 보면 좋을 듯싶다. 영화 평 역시, 실제 쳇 베이커의 삶이 아닌, 영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 되었으니, 이 점 유념해 주기 바란다.
감독은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좀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내용을 각색했다. 그리고 감각적 영상연출과 감미로운 재즈음악을 결합시키며, 요즘에 보기 드문 수작을 탄생시켰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이런 유의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헐리웃 영화가 세계 영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블록버스터 영화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어느 한 쪽 장르에 편중 없이, 매년 다양한 영화들을 고르게 제작하고, 성장, 발전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처럼만에 에단 호크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90년대 대표적 헐리웃 꽃미남 배우가, 이토록 처절하게 망가져 있을 줄은 몰랐다.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튀어 나온다. 그래도 연륜이란 걸,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는가보다. 그는 쳇 베이커 역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에단 호크 자체가 바로 쳇 베이커였다.
마지막으로, 쳇 베이커가 연주한 재즈 스타일의 ‘Over the rainbow'를 꼭 들어보기 바란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삽입곡과는 또 다른 몽환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쳇 베이커는 무지개 너머 자신의 이상향을 매일 꿈꿔왔는지도 모른다. 무지개 너머에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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