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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헐리웃에 X-맨이 있냐? 대한민국에는 최필재가 있다!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한국 사회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나보다. 최근 들어, 고발성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뭔가 잘 못 되도 한참 잘 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괜스레 더 씁쓸해 진다. 물론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회적 비리조차, 수면위로 떠오를 수 없는 통제적 국가들도, 이 지구상에 분명 존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최악의 비인권국을 면했단 사실만으로도 참 다행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안 해주고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한 번 쯤 되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듯싶기도 하다.

누가 그랬던가? 영화는 허구로 가장한 진실을 말하고 있고, 뉴스는 팩트(fact)로 가장한 채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우리 언론이 얼마나 거짓되고 조작 된 보도를 내보내는지는, 세월호 사건이나 기타 커다란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바다. 문제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위해서, 반드시 국민 편에 서서, 국민을 대변해 줘야 할, 이런 제도권 내에 있는 자들이, 어느 순간 돈과 권력에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도 있듯이, 과거 대한민국은 열심히 노력만 하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성공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90년대를 지나가면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로,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열심히 노력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행복의 기준이, 꼭 성공에만, 그 가치 척도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턴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코도, 귀도, 다리도, 팔도, 모조리 베어가는 잔인무도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에서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사회고발 장르 구조를 띄고 있다. 정의로운 주인공이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절대 권력층과 맞서는 일종의 히어로 물이다. 그 정의의 히어로 역할을 연기의 본좌 김명민이 맡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김명민이 맡은 최필재라는 역할이 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 역할과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품 다 대한민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고, 명민본좌가 맡은 역할 역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업계종사자(?) 역할이다 보니, 겹쳐지는 부분이 꽤 많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예측은,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믿고 보는 배우라 했던가? 한때 헐리웃 영화계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출연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작품성이 올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했던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녀와 견줄만한 배우를 찾으라면, 당연 김명민이라 말하고 싶다. 그의 연기에는 오버나 과장이 없다. 절제 된 간결함 속에, 캐릭터가 갖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한다. 게다가 발음까지 매우 정확하여, 엄청나게 빠른 대사 톤에서도, 명확하게 대사전달이 가능한 배우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다보면, 때로는 캐릭터성이 겹쳐질 만도 한데, 그에게는 그런 말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캐릭터와 김명민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끌려 다니는 일이 없다. 어느 한 쪽이 도드라져 보일라 치면, 어느 한 쪽의 것을 채워 융화해 나가는 식으로, 항상 새로운 인물을 창출해 낸다. 이번 최필재 역할 역시 그러하다.

최필재는 전직 경찰 출신의 변호사 사무장으로, 영업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그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 그가 동료 형사인 양형사(박혁권분)의 비리를 캐기 위해, 권순태(김상호분) 사건에 뛰어 들게 된다. 오로지 양형사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다. 최필재가 경찰 옷을 벗게 된 이유가, 바로 양형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형사가 여사님(김영애분) 손에 죽는다. 그리고 권순태 때와 똑같이, 살해 용의자로 최필재가 지목된다. 하지만 여사님 쪽은 권순태와는 달리 최필재가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느끼게 되고, 거금과 함께 살해용의자에 대한 누명을 풀어 줄 테니, 권순태 사건 수사를 중단하라는 딜을 제안해 온다.

여기서,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이 다소 어색해 질 수 있는 상황이다. 최필재는 처음부터 사회 정의를 위해서 권순태 사건에 뛰어든 인물이 아니다. 양형사가 죽게 되면서, 그가 사건을 계속 수사해야 할, 목적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검경을 움직일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세력으로부터 생명에 위협까지 받는다. 그리고 눈 한 번 찔끔 감으면 누명도 풀리고, 막대한 거금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딜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일반적인 이치다. 아니면 사건을 끌고 나갈, 더 큰 당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배우 김명민의 가치가 느껴진다. 자칫 잘 못하면, 만화적 영웅 스토리로 튈 수 있는 지점에서, 명민본좌는 자신만의 카리스마와 최필재의 캐릭터 성을 적절하게 믹스시키면서, 현실적인 장면 전환을 이끌어낸다. 복잡한 갈등들이 많이 나열 되면 될수록, 이를 제대로 마무리 하지 않을 때, 영화의 완성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개연성을 위해서, 구조강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전반적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늘어지는 경향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 적 모순을 극복해야 하는 임무가, 바로 감독과 배우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최필재의 행동에서 영화의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명민은 스토리 구조상의 결함마저도, 전혀 표 안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실성을 부여시켰다.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는 작품 초반에, 이미 범인을 밝히고 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류의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누가 범인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배제시키며 가고 있기 때문에, 범인을 밝히지 않고 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흥미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전의 재미 역시 기대 할 수 없는 이유로, 강한 캐릭터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캐스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영화에,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감초연기의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감독이 영화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얼마나 캐릭터에 힘썼는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감독은 작품의 흥미를 더욱 더 높이기 위해,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을 캐스팅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색다른 모험까지도 감행을 한다. 그것은 바로, 캐릭터성의 불일치다. 기존 배우들의 캐릭터성과 배역의 불일치를 가져옴으로, 이런 언밸런스 한 상황에서, 과감히 웃음을 유도해 내고 있다.

가끔 우리는 배역의 선입견에 빠질 때가 있다. 김명민은 냉철한 변호사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성동일은 노련한 변호사사무장 역할에, 오민석은 젊고 지적인 의사 역할로, 이한위는 교도관 역에 어울려 등등, 이미 배역 이미지에 대한 고정화를 시켜 놓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이런 예측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변호사일 것 같았던 김명민은 변호사사무장으로, 대신 성동일이 변호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적인 법의학자 역할에 어울릴 것 같았던 오민석은 냉혈한 교도관 역으로, 우리 이웃에 마음씨 착한 옆집 아저씨 이미지인 이한위가 법의학자로 등장을 한다.

그동안 다른 작품들에서, 보통 법의학자 역할에는, 젊고 지적인 미모의 여배우가 담당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장르에서는, 여성이 가져다주는 극적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러한 고정화 된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이한위를 법의학자로 캐스팅 한다. 시체를 부검한 뒤에, 법의학자 이한위가 의학적 소견 보이는 장면에서는, 신뢰보다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건을 파헤치는 일에 깊이 관여해 있다는 이유로, 안식년휴가로 쫓겨나가는 상황에서는, 섬뜩함 보다는 코믹함까지 느껴진다. 캐스팅에 대한 성공 여부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극에 재미를 주는 것만큼은 진정 사실이다.

오민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권순태에게 피도 눈물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배우 오민석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기존에 오민석은 드라마에서 의사, 변호사, 무역회사 대리 등, 주로 엘리트 한 배역을 맡아왔었다. 아무래도 배우 자체가 주는, 이미지의 영향이 컸을 거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기존모습을 벗어버리고, 냉혈한 교도관 역할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핫한 배우이기에, 적지 않은 부담감이 느껴졌을 법 한데도 말이다. 영화 후반부,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며, 권순태를 구해내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그가 주는 신뢰적 이미지가 빛을 발하게 된다.

이한위와 오민석 둘 다, 새로운 발견이었던 셈이다.

감독은 캐릭터 성 외에도, 치밀한 개연성과 극적 장치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를 높이는데 힘을 쏟았다. 이 영화의 성격상, 마지막에 반전을 시도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감독은 억지스러운 반전을 시도하는 대신에, 에필로그에 해당 되는 부분에서, 최필재와 권순태의 4년 전, 운명의 첫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오히려 이 장면은, 반전 못지않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도화선에 되어, 사형수 권순태가 최필재에게 편지를 보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4년 전, 예기치 않은, 이 두 사람의 작은 인연 하나가, 권순태를 억울한 죽음에서 구해내게 된 것이다. 좋은 마무리다.

하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영화를 끌고 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상에서 꽤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양형사와 법의학자가 대사 한 줄로 극에서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양형사는 돈과 권력에 매수 되어, 권순태가 살인누명을 쓰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법의학자 역시, 권순태가 살인누명을 썼다는 것을, 그의 의학적 소견으로 밝혀내는 인물이다. 꽤 비중 있는 역할의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는 대사 하나로, 다른 한 사람은 안식년 휴가를 떠났다는 대사 하나로, 갑자기 작품에서 빠져 버린다. 정말 서프라이즈 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양형사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매우 잔혹하고 처참한 장면으로, 연출시켜 넣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차라리 법의학자가 안식년으로 쫓겨나는 과정을,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의 매우 코믹한 상황으로, 연출시켜 넣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대사 한 줄로 빼버리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는 인물들이다. 특히 양형사의 경우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인상 깊은 열연을 펼친, 배우 박혁권이 그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쉽기만 하다. 그의 또 다른 명연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매우 실망감이 컸을 거라 여겨진다.

하나 더, 최필재의 아버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최필재는 전과자 아버지와 경찰인 할아버지(신구분)를 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최필재의 아버지는 비록 작품에 등장을 하지는 않지만, 최필재가 경찰이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그가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최필재의 행동에서, 더욱더 대중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과자가 된 거라면, 최필재가 권순태를 도와주는 일에 힘을 실을 수 있고, 경찰인 아버지에 대한 삐뚤어진 반항심으로 전과자가 된 거라면, 최필재의 성격형성 부여에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감독은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러닝타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감독의 몫이 된다. 제작사 또한 좋아 할리 없다. 2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상영시간 때문에, 추가로 시간을 늘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추측컨대, 많은 촬영 분들이 편집 과정에서, 적지 않게 잘려 나갔을 거라 생각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 된 내용들은 영화의 완성도와 직결 된 문제이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점들이, 매우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모습들을, 연기자들의 열연과 코믹한 연출을 통해,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결말이 해피엔딩이었다고 해서, 마음마저 홀가분한 것은 아니다. 실화적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언제든 부와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한낱 소모품처럼, 이용당하다 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재벌가 며느리 살해범으로 권순태가 지목 되었을 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언론 역시, 양형사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결과만 보도할 뿐, 누구하나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대중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보도 내용만 사실로 믿고, 권순태에게 손가락질 해대기 바쁘다. 결국 사형수인 권순태의 손을 잡아 준 것은, 경찰도, 검찰도, 정치인도, 언론도 아닌, 전직 경찰 출신의 변호사 사무장 최필재였다. 힘없는 소시민들은,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항시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 오히려 공권력을 지닌 자들이, 힘없는 자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세상이다.

권순태는 감옥에서도 통제와 감시의 나날을 보낸다.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그에겐 최소한의 인권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교도소 안에서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죄수(이문식분)가, 어느 날 돌연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해 버린다. 내 주변에 있는 지인들 역시도, 그들과 가족의 안전이, 돈과 권력을 지닌 자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땐, 언제든 나를 향해 칼을 겨눌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 줬으면 한다. 힘 있는 자들이 존재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중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민중이 없이는, 돈과 권력도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악역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 김영애 선생님과 폭풍성장을 한 김향기양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