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김인홍이야!!! 영화 봉이 김선달
장르 영화에 대해, 좀 더 철저해 질 수는 없는 것일까?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데이트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이 아니라면, 영화의 장르를 선택해서 보는 이유는 다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코믹 영화를 보며 한 없이 웃고 싶다던가, 오늘은 왠지 새드(sad)한 영화를 보며 펑펑 울고 싶다던가... 물론 현재 한국의 극장 시스템에서는, 메이저 제작사들의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기 식으로 배분해주기 때문에, 영화를 내 기분에 맞춰 골라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크린 독과점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맞춰 보게 된 영화라 할지라도, 그 장르가 코믹 어드벤처물이라면, 철저히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수요자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주는 것과 동시에, 영화의 롱런, 즉 흥행과도 직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감독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중압감이란 게 있는 듯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왜 코믹영화를 만들 때, 코믹한 것에만 전념하지 않는 것일까? 왜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내용들을 집어넣어, 영화가 갖는 고유의 장르에서, 한 없이 비껴나가려 하는 걸까? 코믹영화라 하더라도 무거운 주제의식이 없으면, 영화가 아니란 얘긴가? 아니면, 감동도 주고, 슬픔도 주고, 웃음도 주고, 교훈도 줄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적 영화를 꿈꾸는 것일까?
과거 블랙코미디의 대가인,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이 모든 요소들을 충족시켰다고 본다. 그의 영화는 한 없이 웃다보면, 왠지 처량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한없이 껄껄거리던 그 웃음의 대상이, 다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그렇게 강인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기본 원칙에 따랐기 때문이다. 비정한 사회 현실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갔지만, 코믹이라는 장르적 성격을 잃지 않았다. 바로 기본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믹 영화라면, 철저하게 웃음을 줘야 한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중간에, 딴 생각을 하게 할, 빈틈을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 1분의 한 번꼴로 웃음이 터져 나오 게 해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5분의 한 번꼴로는 웃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코믹 영화로서의 의무를 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영화에서는, 이렇게 장르에 충실한 영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포영화가 슬프기까지 한 영화도, 더러 있을 정도다. 그리고 코믹 영화에 감동과 애국심 등을, 억지스럽게 끼워 넣으려 까지 한다. 기본 설정이나 베이스에 무게를 두는 것은, 전혀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영화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장르에 위배되는, 쓸데없는 내용들이 너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해학과 풍자 등, 코믹한 요소들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무거운 내용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한다. 이런 영화들에게, 코믹이라는 장르 부여가, 정말 가당키나 한 것일까? 차라리 그 시간에, 개그 콘서트를 보고 있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적어도 개콘은 각 코너마다, 그래도 우리에게, 한 두 번씩은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3분에 한 번꼴로, 우리를 웃겨 주는 셈이다.
영화 ‘봉이 김선달’에 대한 기대가 나름 컸다. 조선시대 판 인디아나 존스가 탄생하는 줄 알고, 내심 기대를 하고 본 영화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도입부는 나쁘지 않았다. 때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효종(연우진 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명청(明淸)전쟁의 화살받이가 되기 위해서, 청나라로 끌려간다. 그 무리 속에, 봉이 김선달인 김인홍(유승호 분)이 있다. 발상은 매우 좋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로운 시대적 사기꾼인 봉이 김선달을, 역사적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비운의 인물로 설정한 것까지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보원(고창석 분)과 견이(시우민 분)와의 만남도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들 세 사람은 남의 나라들 간의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기로 한다. 굉장히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될 줄 알았다. 그들의 탈출 행각이 꽤 코믹하고 박진감 있게 전개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에 대한 아무런 묘사 없이, 몇 년의 시간을 그냥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의 사기행각 장면으로 이어진다.
흥미롭게 어드벤처 장면들로 채워 나갈 수 있었던 부분을, 감독은 왜 과감히 생략해 버린 것일까? 어드벤처 영화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레이더스(인디아나 존스1)’만 보더라도, 영화 시작부터 탈출 장면이 꽤 임팩트 있게 펼쳐진다. 그래서 한 순간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 ‘봉이 김선달’에선 이러한 코믹 어드벤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그냥 포기하고 넘어간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김인홍의 기발한 사기행각이, 청나라 탈출에서부터 펼쳐졌더라면, 훨씬 더 관객몰이가 쉬웠을 것이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만회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의 사기기술 또한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씩 시도했던 장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보다 훨씬 못하다. 여장을 하면 하는 대로 속고, 노인으로 분하면 분한 대로 속는다. 당시 기술로도, 여장이야 유승호의 외모가 뛰어나 충분히 속는다 치더라도, 노인 분장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 시대에 특수효과 기술이 존재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20대 젊은 청년이 노인으로 변장하여, 세상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인지... 유승호의 우스꽝스러운 노인분장과 어색한 노인행세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은 매우 억지스럽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감독의 그럴싸한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대목이다.
도주의 기법 역시 너무도 단순하다. 김인홍은 나라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천하제일의 사기꾼이다. 수많은 사기행각에도 그가 잡히지 않았던 건, 그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평범한 도주만 일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김인홍을 잡지 못한다. 최소한 관객들에게, 나였어도 영화 속 봉이 김선달에게 충분히 속았을 것이다, 절대로 잡지 못했을 것이다란, 공감을 형성시켜 줬어야 했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그저 바보로만 만들 뿐, 천하제일의 사기꾼에게 전혀 비범함을 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로운 사기꾼도 아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에게 다보탑을 팔고, 어수룩한 남자에게 미인계를 써서 돈을 갈취한다. 심지어는 임금의 금궤에까지 손을 댄다. 당시 시대상으로 궁에 난입해, 금상의 물건을 훔치고, 금상의 목욕하는 곳까지 무단 침입하였다면, 이는 능지처참을 면할 수 없는 역모 죄에 해당 된다. 국법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에, 당사자인 임금이 용서한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몰랐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온양행궁 때 금궤를 가져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보초 한 명 없이 허술하게 진열해 놓은 상황은, 사실감결여 그 자체다.
그리고 정말로 김인홍이 타락한 관료들만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의로운 사기꾼이라면, 부패한 자들에 대한 풍자적 묘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영화 어디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다. 그저 아이를 낳고 싶은 여자에게, 결혼을 원하는 남자에게,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아버지에게, 김인홍은 각각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물의 행동 역시 사실적이지 못하고 연출의 디테일 또한 현저히 떨어진다. 견이와 윤보살(라미란 분)은 성대련(조재현 분) 일당의 손에, 마치 죽기를 작정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화 중반부에, 견이가 김인홍 대신 성대련 일당에게 잡힌다. 심지어 성대련 일당들도 견이가 김인홍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말까지 내뱉는다. 그렇다면 “네가 김인홍이냐?”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한번쯤은 거짓말로 둘러댔을 법한데도, 견이는 자신이 김인홍이라며, 오히려 그들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다. 그리고 곧바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차라리 “사람 잘 못 보셨소. 나는 김인홍을 흉내 내고 다니는 거리의 양아치요.”라고 둘러댔더라면, 훨씬 더 사실적이고, 훨씬 더 코믹적이지 않았을까? 코믹 어드벤처물이라는 영화의 장르적 성격에도 더 부합됐을 것이다.
윤보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대련의 칼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 김인홍이 있느냐?”란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못하고 그저 우물쭈물 거리기만 한다. 금군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떼죽음을 당할 뻔한 상황이다. 윤보살이 누구인가? 재치 있는 입담과 넉살좋은 연기로, 사대부 아낙들을 감쪽같이 속여 넘기는, 사기꾼 점쟁이가 아니던가? 그동안 그녀가 순발력 있게 발휘하던 기지(機智)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견이와 윤보살 모두, 김인홍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상황이고, 대신 죽으려 했던 상황이라고, 좋게 해석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의 극단적 연출로, 사실감을 떨어트리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성대련은 한 술 더 뜨기까지 한다. 성대련은 비록 자신의 동족을 청나라에 팔아먹은, 천하에 부패한 악질관료로 등장을 하지만, 매우 침착하고 치밀하며, 예리한 눈썰미까지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여지없이 변질 되어 버린다.
대동강을 딜하는 과정은 더욱 가관이다. 성대련은 김인홍이 첫눈에 반한 규영아씨(서예지 분)를 볼모로, 아무런 대가 없이, 대동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거금 50만 냥을 선뜻 거래 금액으로 내거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자행(自行)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대련은 김인홍을 처음 본 순간에도, 그가 천하의 사기꾼 김인홍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던 인물이다. 아무리 조작 된 왕조실록을 보고, 대동강을 개인의 소유물로 믿게 되었다하더라도, 김인홍이란 의심을 끝까지 거두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딜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거금 50만 냥에 해당되는, 실제 토지문서를 들고 나온다. 윤보살을 위협하며, 김인홍의 진위를 가리려 했을 정도면, 거의 확신했다고 볼 수 있는데, 왜 실제 토지문서를 들고 나왔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상이라도 줘야 할 인물인 듯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코믹 어드벤처류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코믹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30분에 한 번 정도 큰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니, 코믹 어드벤처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걸맞지 않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30분의 한 번 정도는 큰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단편적인 웃음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기대만큼의 만족한 웃음들은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코믹 어드벤처 영화라면, 관객들에게 쉴 틈을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영화 ‘봉이 김선달’ 역시 웃음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뒤로 한 채, 신파적 요소를 집어넣어, 극의 흐름을 스스로 끊어 놓고 있다. 굳이 견이를 성대련 일당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감독은 이 사건을 통해, 김인홍이 성대련에게 복수를 결심한 계기를 마련해 주려 한 것까진 알겠지만, 청나라 전쟁에 억울하게 끌려간 것만으로도 그 동기는 충분했다고 본다. 너무 지나친 설정이다. 당위성도 현저히 떨어진다. 보통 우리나라 오락 영화에서만 이러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발생을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세계 어느 나라 코믹영화에서도 정의의 편에 선 주인공급의 배우를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관객이 원하는 건 웃음이지 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한 관료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원했던 게 아니던가? 코믹영화에서 억지스럽게 눈물샘을 자극하여,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이 영화에서 댐 폭파 장면이 왜 등장하는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드벤쳐류의 오락영화에서 보통 댐 폭파 장면은 코믹한 반전이나 볼거리를 제공할 때 주로 사용 된다. 대표적인 영화가 1979년작 인 나바론2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댐은 아무런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엄청난 적의 군대를 수몰시킨 것도 아니고, 극의 흐름을 바꿔 놓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비주얼이 볼만 했던 것도 아니다. 김인홍이 막대한 돈을 들여 댐을 건설했지만, 영화에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이미 결말이 다 결정된 상황에서, 성대련 한 사람을 물로 쓸어버릴 뿐이다. 도대체 왜 댐을 만들었고, 왜 댐을 폭파시킨 것일까? 성대련의 최후를 멋지게 보여 주기 위해서?
감독은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세트도 지어야 했을 것이고, CG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댐을 폭파시킬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던 편이 더 낫다.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의 탈출 장면이라도 멋들어지게 연출시켜 보던가. 보원이 멍하니 서 있는 김인홍의 팔을 잡아끌어, 풀숲으로 숨는 게 전부다. 어이없는 코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는 장면이다.
영화는 기본에 충실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 될 수 없다. 물론 재미를 느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일이다. 하지만 영화가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을 때,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는, 많은 대중들로부터 공감을 형성할 수가 없다. 공감을 형성할 수 없는 영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오래 가지 못하는 영화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영화는 반드시 기본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영화 ‘봉이 김선달’은 좋은 소재를 갖고 출발했기 때문에, 충분히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결과, 그저 그런 수준 이하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청나라는 중국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고유의 문자와 언어를 지닌 별개의 민족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 영화에서 조선의 언어를 중국어나 일본어로 표현하면 좋겠는가?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tvN드라마 ‘삼총사’에서는 만주족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감독은 이 점 반드시 참고해 주기 바란다.
'세상만사 이런 생각 저런 생각 > 영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평론 터널 (하) (0) | 2016.09.01 |
---|---|
영화평론 터널 (상) (1) | 2016.08.30 |
영화평론 사냥 (0) | 2016.07.01 |
영화평론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1) | 2016.06.20 |
영화평론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5)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