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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곡성

불친절한 홍진씨의 낙서장(영화 '곡성'에 대하여)

 

이 영화를 본 전체적인 느낌은 불친절한 나홍진 감독의 낙서장을 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나홍진 감독은 그림을 그린게 아니라 낙서를 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재질의 값비싼 도화지 위에 말이다. 낙서를 했으니 부분적으로는 굉장한 이야기 거리로 흥미를 재공하긴 했다. 하지만 전체적 결과물은 그저 낙서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림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 최소한 '이거 뭐지!!!???'의 물음표 내지 느낌표는 찍었을 거라 여겨진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난해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영화 '곡성'은 난해하다는 기준에서도 한없이 벗어난다. 감독이 이곳저곳에서 크나큰 판을 벌려놨지만, 정작 판을 왜 크게 벌렸는지? 왜 판을 크게 벌려놓다가 말고 서둘러 판을 접고 말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얘기도 없다. 이걸 그냥 난해하다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난해하다는 것은 그래도 플롯내에서, 각자 관객의 머리 속에서, 그래도 어렵사리 짜맞추기가 가능해야 한다.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서 해석은 크게 달리될 수 있지만, 짜맞추다 말고 앞뒤에 난 이빨과 홈이 맞지 않아서 포기하게 만들면 안된다. 하지만 영화 '곡성'은 이러한 친절함 조차 보여주고 있지를 않는다. 한마디로 난해한 영화가 아니다. 그냥 감독이 마음가는대로 긁적거린 낙서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단 여기서 이 영화의 칭찬부터 해보고 가겠다. 영화는 매우 흥미롭고 빠르게 전개된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반 이상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모터싸이클 처럼, 아주 속도감 있게 관객몰이를 한다. 적어도 영화가 끝나기 5분전까지는 그랬다. 연기자들의 연기력 또한 훌륭했다. 나홍진감독은 영화를 참 재미있게 만드는 감독중에 하나이다. 그의 전작인 '추적자'와 '황해'만 보더라도 흥미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연출력이 훌륭한 감독이다. 그렇다면 영화 '곡성'은 무엇이 잘 못 되었다는 말인가? 연출은 훌륭했지만 프리프로덕션 단계인 기획이 철저하지 못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악마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었지만 악마에 대해서 감독은 잘 정리하지 못했다. 악마를 그리고 싶어 악마의 모습과 행동은 관찰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그의 내면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악마의 속마음을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악마에 대한 본성도, 악마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악마의 행동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인간보다도 못한 미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쪼잔함을 감추기 위해 더 없이 잔인하고 잔혹한 모습만을 보이려 한다. 그러다 그냥 끝내버린다. 진짜 나는 쪼잔한 못난이라고 인정을 한 것 처럼 말이다.

솔찍히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실망한 인물이 바로 악마다. 내가 최소한 악마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보다 먼저 이세상에 온 적그리스도의 악마라면 그래도 넓은 시야와 커다란 청사진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느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와서 낚시질 하듯 사람을 낚아서 잔혹한 패륜을 저지르게 한 뒤, 자신을 의심하고 해꼬지 했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가는 악마라면 차라리 다시 지옥으로 되돌아 가느게 좋을 것이다. 그는 악마로서의 전혀 자격이 없다. 저주의 살에 맞아 목숨을 구걸하는 나약한 악마, 사람들의 몽둥이를 피해 36계 줄행랑을 쳐대는 비겁한 악마, 그의 행동에서 전혀 악마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반전을 위한 트릭이었다는 말 조차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악마가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보니, 아무리 재미있게 연출된 영화라 할지라도, 마지막 느낌은 그저 찝찝함만이 남을 뿐이다. 감독은 악마의 본성을 더 자세히 공부하고 정리한 뒤 영화를 기획했어야 옳았다. 결국 악마에 대한 개념 정리가 부족하다보니, 마지막 5분이 내가 벌려놓은 판을 수습할 길이 없어, 그냥 대충 얼버무려 마무리 지어버린 졸속(拙速)같아 보인다. 적어도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을 대신해 죽었을지언정, 그의 포부와 행동은 늘 일관성이 있었고, 자신을 신이라고 증명해 보일 수 있었던 자신의 대한 믿음 역시 확고했다. 악마가 신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단순히 사악하고 잔인무도해서가 아니다. 신과 같이 넓은 포부와 큰 그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것이다.  악마가 신과 대립된다해서 치졸하고 비겁한 존재는 아니다. 비록 본성은 절대 악을 지니고 있다해도,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그에 따른 행동이 늘 일관된다는 변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감히 악마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볼 때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전체적으로 속이 곪은 느낌이 든다.

코믹과 공포를 잘 조화시키면서 끌고 왔던 2시간의 시간들이, 마지막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은 절대 마지막 5분의 마무리를 잘 못해서가 아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기 때문에 마지막 단추를 껴넣을 곳이 단지 없었을 뿐이다. 5분의 마무리를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저 착시현상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악마에 대한 기획을 잘 못했다. 결국 그로인해 미완성 같은 낙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림이 아닌 낙서가 되다보니, 당연히 불친절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커다란 종이 이곳저곳에 제멋대로 낙서를 해 놓은 게 많으니, 이것들을 한데 모아 수습할 길은 전혀 없었다고 본다.

2시간 반 동안 나홍진 감독과 함께 떠났던 '곡성'여행은 비록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재미있는 대사와 코믹한 인물 설정 그리고 공포스러운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굿판씬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음에는 영화 '곡성'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감독이 벌려놓은 판이 많아서 해석의 시각 또한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종교, 대한민국 현사회, 인간군상 등 각기 다른 주제로 접근 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