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은 세월호가 아니다... 영화 터널
재난영화에 있어서 주인공들의 생존 과정을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수(하정우 분)와 미나(남지현 분) 단 둘만이 터널에 갇히는 주인공으로 등장을 한다. 이 점 역시 참 아쉬운 대목 중에 하나이다. 이 영화가 세월호의 이름을 부여받아 관객들과 함께 아픈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었다면, 좀 더 많은 피해 인물들을 등장 시킬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정수와 미나가 자동차 딜러나 단순 운전자가 아닌, 수학여행 버스를 통솔하는 선생님 역으로 등장했더라면, 좀 더 사실적으로 세월호에 다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시 이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 대학 MT에 동참을 한 교수와 조교, 또는 교수와 학생쯤으로 다소 돌려서 그려졌어도 훨씬 더 괜찮았을 거라 여겨진다. 그래서 대형 버스차량이 터널에 갇히는 사고로 묘사되었더라면, 세월호의 문제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더욱 더 진실 되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세월호를 염두 해 두지 않고 처음부터 단순 재난영화로 기획된 것이었다면, 꽤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그랬던 것이라면, 이 영화는 흥행에 있어서 상당히 운이 좋은 영화라 볼 수 있다. 대중들이 알아서 이 영화를 세월호와 연관 지어 관심을 가져 줬으니 말이다. 감독은 영화 초기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영화적 이득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국민들의 아픈 기억과 정서를 나름 적절히 잘 활용하여, 영화 흥행으로까지 이어지게 한, 한마디로 기획의 완벽한 승리다.
대한민국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늘 어려운 난제와 맞닥뜨려진다. 영상물 심의나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소재나 주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영화 ‘터널’ 역시, 워낙 민감한 내용을 영화화 했기에,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회든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으로, 심의나 검열이 겁이나, 표현할 수 있는 수위를 스스로 낮춰 잡는다면, 한국영화계의 밝은 내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서 볼 때 영화 ‘터널’은 세월호를 닮은 영화라기보다는, 세월호를 철저히 흥행에 이용한, 속임수 영화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늘 상 대한민국이라는 시한폭탄을 떠안고 사는 것 같아,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의 현 사회는 항상 사고가 있어야 행동에 옮기고, 그 행동조차 오래 가지 못 한다. 비슷한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을 것을 보면, 매번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더 큰 문제는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이 이 사회가 그래도 나를 지켜줄 거라는, 나를 위기에서 구해 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터널’에서도 정수는 미나에게 말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밖에서 우릴 구해줄 거예요.”라고, 하지만 미나는 끝내 숨을 거둔다. 그리고 터널 밖에 사람들은 정수마저도 포기한다. 정수를 살려낸 사람은 정수 본인이다.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자신의 신변안전과 생존을 자신스스로가 책임져야만 했던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서, 이 사회가 인간을 포기하는 사회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터널 안에 갇혀 있는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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