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감독의 영화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루키의 원작단편소설이 갖는 짧고 강렬한 미스터리 스릴러에, 이창동 감독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그의 색깔을 덧입혀, 좀 더 복잡 다양한 철학적 세계관으로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원작이 갖는 미스터리 스릴러 적 관점으로, 두 번째는 실존주의적 세계관으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계층 간의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구조로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미스터리 스릴러 적 관점.
원작 또는 예고편만 보고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가 갖는 긴장감과 섬뜩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다. 오히려 이창동감독답게 지극히 서정적이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영상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좀, 영화 중간에는, 지루하면서 밋밋한 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영화 ‘버닝’만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 될 수 있다. 같은 스토리라도, 표현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색깔로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라는 요소도 이창동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태생으로 승화되어, 재탄생되어진다. 바로 단점 같은 장점이 되는 것이다.
1982년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 출간 당시, 부잣집 청년(영화 ‘버닝’에서는 스티븐연이 분한 벤)의 정체가 ‘단순 방화범인가? 아니면 잔혹한 연쇄 살인마인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버닝’ 역시 열린 결말로, 원작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종수(유아인 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벤은 연쇄살인마가 분명하다. 하지만 반면에 벤은, 유일하게 해미(전종서 분)의 실종사실을 알고 있는, 종수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경계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 해미를 찾았다는 종수의 연락을 받고도, 거리낌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실제로 벤이 해미를 살해했다면,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다. 분명 종수가 자신을 의심하고 뒤쫓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꼈을 텐데도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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