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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골프이야기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 - 67년만의 대기록. 고진영 루키데뷔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

2018년 미LPGA(이하 LPGA라고 한다.)에, 2017년 박성현에 이어, 또 한명의 한국출신의 슈퍼루키가 탄생했다. 바로 고진영이다.

고진영은 작년에 한국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2017 LPGA 3관왕(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신인왕)에 빛나는, 유력한 우승후보 박성현을 따돌리고 우승하여 풀시드를 확보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루키 데뷔무대로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이하 호주오픈이라 한다.)을 선택하게 된다.

대회 전부터 고진영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높았다. 비회원신분으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LPGA에 무혈입성을 이룬데다가, 고진영은 한국LPGA(이하 KLPGA라 한다.) 무대에서도 늘상 정상권을 유지했던 준비된 스타였기 때문이다. LPGA에서도 시즌 시작 전부터 2018년 주목할 만한 스타로 고진영을 지목하였다.

고진영의 장점은 기복이 적고, 늘 한결같이 일관된 플레이를 한다. 그래서 우승권에 진입하면, 좀처럼 선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라운드 중간에 동타나 역전을 허용했다 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고, 다시 재역전을 이루어 내는 경우가 많다.
첫 우승을 이뤄냈던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도 그랬다. 2타차 선두로 파이널 라운드를 시작한 고진영은 초반 박성현의 무서운 기세에 밀리며, 결국 역전을 허용하게 된다. 이쯤 되면 무너질법도 한데, 게다가 상대는 LPGA 상금왕 1위인 박성현이었다. 하지만 고진영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했다. 오히려 라운드 중반부를 넘어가자, 흔들리기 시작한 건 박성현이었다. 고진영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자, 박성현은 무리한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결국 이것이 뼈아픈 실수로 이어지며, 우승컵은 고진영의 품에 안기게 된다.
이번 호주오픈 역시, 마지막 라운드 초반에 최혜진의 상승세가 무서웠다. 3라운드까지 고진영이(11언더파) 최혜진(6언더파)에 5타나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8번홀까지 오면서, 최혜진은 3타나 줄인 반면, 고진영은 한타도 줄이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에 머무르게 된다. 2타차(고진영 11언더파, 최혜진 9언더파)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흔들릴 법도 한데, 게다가 상대는 현 세계랭킹 11위(2018년 2월 12일 기준)의 슈퍼아마추어 출신의 새내기 프로 최혜진이다.
최혜진이 누구인가? 2017 U. S. 여자오픈에서 2위에 올라 일약 깜짝스타가 된 선수이다. 그리고 KLPGA 프로 데뷔후, 베트남에서 열린 개막전인 효성챔피언십에서 우승도 차지했다. 그야말로 아마추에서 프로로 갓데뷔한, 진정한 슈퍼루키 중에 슈퍼루키다. 게다가 세계랭킹에서도 최혜진(11위)이 고진영(20위)보다 9계단이나 더 높다.
하지만 고진영은 8번홀 이후로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9번홀에서 최혜진의 버디에 같은 버디로 응수한 고진영은 특유의 끈기로 후반홀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아웃코스로 접어들자 오히려 전반에만 무려 4타나 줄인 최혜진이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결국 고진영이 17번홀에서 천금같은 버디를 잡으며, 사실상의 우승을 결정짓게 된다.

고진영의 이번 우승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1951년 이스턴오픈에서 베벌리 핸슨(USA) 이후 그 어떤 선수도 이룬적 없는, 67년만에 LPGA 루키데뷔전에서 우승한 선수가 되었고, 그것도 와이어투와이어의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이 루키데뷔전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은 LPGA 역사상 지금까지 아무도 이루지 못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고진영이 LPGA 역사를 새롭게 쓴 것이다.

물론 이번 대회에는 박성현, 박인비, 전인지, 그리고 펑샨샨, 렉시톰슨 등 LPGA 최정상급의 선수들이 대거 불참했다. 아마도 네셔널 타이틀이 달린 호주오픈이 지리적 여건상의 이동 및 그로인한 컨디션 조절의 어려움과 컷오프가 있는 대회라는 점등이, 이들이 대회를 불참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130만 달러라는 다소 낮은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자칫 잘못했다가 컷오프만 당해, 상금 획득은 커녕 경비만 축내고 돌아가야 하는 속 쓰린 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주오픈에, LPGA 최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불참헀다고 해서 고진영의 성과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골프에서의 우승은 최정상급 선수들이 얼마나 참가했느냐보다는, 내 자신이 얼마나 좋은 경기를 했냐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최정상급 선수라해서 항상 우승만 하는 것도, 매번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다. 단지, 확률상의 우위를 지킬 뿐이다.

고진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시즌 초반대회에 우승이 나왔다고 해서, 한 시즌의 결과가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2017년에 경우도, 초반에 우승을 거머 쥔 선수들의 시즌 전체 성적이 그리 썩 좋지 못했다.
LPGA투어는 고된 생활의 연속이다. 수천킬로나 되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 갈 때도 있고, 넓은 땅덩어리의 미대륙을 동서남북 횡단해야 할 때도 있다. 짐 싸고 이동 해서 짐을 풀면, 또 다시 짐을 싸고 이동해야만 한다. 경기 내적인 피로도 보다 경기 외적인 피로도가 훨씬 더 하다. 이를 이겨내고 잘 적응하는 선수만이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고,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고진영은 국내에서 단 한 번도 1인자가 된적이 없다. 김효주, 전인지, 박성현, 이정은6에 밀려, 매번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이번 호주오픈 우승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제 2인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1인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 다음주부터 태국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2연전이 더욱 기대가 된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HSBC 대회는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초청자가 정해지기 때문에 고진영의 참가가 확실하다. 하지만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타일랜드 LPGA는 LPGA 전년도 상금순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고진영이 참가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작년에 고진영은 LPGA 정회원 신분이 아닌, 비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즌초반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대회에서 고진영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